3박 4일 인천~부산 633km 4대강 국토종주 후기 (3일차)
Season3 : 직딩/박진심의 極韓여행

 

 

파스 두 장과 진통제 두 알의 힘

 

 

국토 종주 3일 차, 몸에는 피로가 점차 쌓여간다. 해병대 동생들은 상주보 민박에서 바로 출발, 나는 약속대로 픽업했던 장소로 다시 돌아가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상주보 민박 다음 숙소인 낙동강 하류 합천군에 위치한 강변모텔에서 해병대 동생들을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해병대 동생들은 160km, 나는 175km를 달려야 한다. 34일 일정 중 제일 길었던 거리다.

 

출발 전 상주보 민박 사장님의 조언에 귀 기울였다.

 

이화령고개는 아무것도 아니에여

 

5km 이화령 고개가 아무것도 아니라니 무슨 소리란 말인가.

 

우회 없이 정 코스로 가면 고바위를 네 번 더 넘어야 해여, 힘들면 고개에서 무리하지 말고 꼬옥 끌바하세여

 

사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우회도로를 통하지 않고 국토 종주를 한다면 다람재, 무신사, 박진고개, 영아지고개 라는 난관을 넘어야 한다고 한다. 고개에서 무리해서 페달을 밟지 말고 끌바 자전거를 끌고 가라는 뜻이다. 나는 사장님에게 무리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무릎이 아파짐에 따라 남은 구간을 오늘 중 완주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도로에서 만난 삼거리 매점이라는 투박한 이름의 가게에서 연양갱과 파스를 샀다. 가게의 주인은 할아버지였는데, 국토 종주 중인 나의 모습을 보고 파란색 진통제 두 알을 주셨다. 종종 이곳을 들르는 여행객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며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두 장의 파스를 각 무릎에 하나씩 붙이고 진통제를 복용하니 다행히도 금세 통증이 가셨다. 불행 중 다행으로 175km 120km 이상 평지가 이어졌기에 시속 20km 이상을 유지하며 빠르게 달려갈 수 있었다.

 

 

서쪽엔 해가 지고 동쪽엔 달이 뜨고

 

 

강정 고령보부터는 낙동강 하류길이다. 이곳은 낙동강의 물줄기가 금호강과 만나 더욱더 굵어지는 합수 지점이다. 고령보 인증센터에 도착하니 UFO를 닮은 푸른색 타원형의 기이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디아크라는 이 이름의 건축물은 세계적인 이집트 건축가 하니 라쉬드가 물고기가 물 위로 뛰어오르는 순간과 물수제비가 물 표면에 닿는 순간의 파장을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눈엔 아무리 봐도 UFO가 불시착한 모습으로 보인다.

 

 

디아크를 둘러싼 수변공원에는 삼삼오오 자전거나 전동바이크를 타는 대구의 가족들 연인들을 볼 수 있었다. 흔한 풍경일지도 모르겠지만, 자전거 길을 달리며 사람들 구경을 제대로 못 한 나는 여유 적적한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외로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은 실로 오묘하다. 일상을 벋어나려 여행을 떠났지만, 낯선 풍경 속 혼자가 되니 도리어 일상이 그리워진다. 여행 속 타인의 일상을 통해 나의 평범한 일상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을 배운다.

 

낙동강 달성보 인증센터를 지나니 달성군의 어느 작은 시내에 진입했다. 길게 뻗은 시골 도로 위 앞에는 달성우체국의 간판이 보인다. 저녁 여섯시, 동쪽 하늘에는 해도 지기 전에 성질 급한 보름달이 벌써 솟아있다. 해와 달이 공존하는 이 시간, 무의식중의 나는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순간을 즐긴다. 예상하지 못했던 장소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의 아름다움을 두 눈과 마음에 담았다. 여행의 즐거움은 예상치 못함에 있다.라는 어느 여행가의 말이 떠올랐다.

 

 

 

끌바로 오른 다람재와 무신사

 

 

순간이 아름다운 달성보를 지나니 앞에는 아직 다람재와 무신사라는 두 난관이 남아있었다. 다람재라는 귀여운 자연지명과는 달리 언덕의 평균 경사도는 11%이며 평균 거리는 1km 정도로 험난한 코스다. 상주보 민박집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자전거에서 내려 한걸음씩 올라가며 무릎을 아껴두기로 한다.

 

다람재를 지나니 다시 얼마간 어둠 속에서 평지코스를 달려야 했다. 전날 야간 라이트를 잘 충전하지 않은 탓에 불빛이 점점 약해지더니 무신사 임도를 앞두고 급기야 꺼져버렸다. 다행히 오늘따라 보름달이 밝아 밤길을 안내해 주었고, 언덕 위 대구 무심사에는 군데군데 불상을 밝히는 조명이 임도를 밝히고 있다.

 

절 입구에 도착하니 절에서 사는 한 마리 흰둥이가 보인다. 흰둥이가 의도했을까? 아니면 내 착각일까? 무심사를 통해 합천창녕보를 향해 내려가는 하행 길 입구 지점까지 흰둥이는 앞장서서 나를 안내했다. 흰둥이는 내가 멈춰 서면 같이 멈춰 섰고, 내가 표지판을 따라 움직이면 잘 따라오고 있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움직였다. 나야 흰둥이를 처음 봤지만, 흰둥이는 나처럼 국토 종주를 하는 여행객을 여러 번 만났으리라.

 

 

시골식 노브랜드 양념&후라이드 치킨

 

 

175km를 완주한 끝에 합천 강변모텔에서 해병대 동생들과 조우했다. 우회 길을 통해 나보다 일찍 강변모텔에 도착한 동생들은 배고픔을 참다못해 근처 치킨집에서 치킨을 배달시켜 먹었다 했다. 나는 그 말에 급기야 전화번호를 받아 가격도 물어보지 않은 양념&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주문했다.

 

급하게 샤워를 마치니 누군가 방문을 두드린다.

 

치킨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고소한 튀김향이 솔솔 나는 치킨 봉지를 건네받았다. 하얀 치킨 봉지에는 양념&후라이드 치킨이라는 붉은 글씨가 적혀있다. 흔히 먹던 브랜드 치킨과 다른 시골식 노브랜드 치킨이다. 합천의 이름 모를 치킨은 유명 브랜드의 것이 아니었지만, 배고픔이라는 마법 소스가 이 시골 치킨에 묻어 그 어떤 치킨보다 맛있게 만들었다.

 

 

박진고개와 영아지 고개에 무릎을 묻다.

 

 

34일 국토 종주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박진고개와, 마지막 난관 영아지 고개를 넘기 전 마음의 준비를 하며 자전거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다. 이 두 고개만 넘기면 종착지인 부산 하구둑까지 언덕 없는 탄탄대로다.

 

경남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 박진교에서 낙서면 부곡마을까지 약 4Km, 그 구간 중간에는 박진고개가 버티고 있다. 박진고개를 오르는 라이딩족들은 박진고개를 속칭 빡진고개라 부른다. 최대 경사도 13%로 가파른 고개는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기에도 힘들기 때문이다. 속된말로 이곳에 오르기 빡세다라고 하여 빡진고개가 되었다. 자전거 도로 옆 회색 시멘트벽에는 지친 여행자들의 마음속 생각들이 고개의 악명을 증명하듯 생생히 낙서 되어있다.

 

 

 

자전거를 버리세요! 그러면 날 수 있어요!

 

힘들다. 빡진고개

 

명호야 해내라!

 

이곳에 무릎을 묻고 갑니다.

 

힘들게 달려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니 시멘트벽에는 도리어 고개를 오른 성취감을 기념하려는 여행자들의 이름과 날짜가 빼곡히 적혀있다. 나도 정상 쉼터에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낙동강의 절경을 만끽해본다. 하지만, 아직 긴장을 놓을 수 없다. 박진고개의 내리막길 끝에 마지막 난관 영아지고개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나게 내리막길을 질주하니, 고추와 오이 유채꽃으로 유명한 영아지 시골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박진고개에서 이미 지쳐버린 나는 영아지 고개를 보자마자 전의를 상실하고 자전거에서 내린다. 지나쳐온 다른 고개와는 달리 시작부터 높은 경사는 유일하게 처음부터 정상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던 고개다. 더구나 내리막길은 온통 자갈밭이어서 속도도 낼 수 없다. 가장 짧았던 고갯 길이 도리어 가장 힘들고 기억에 남는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전설적인 뉴욕 양키스 포수 요기 베라가 한 말이다. 낙동강 둔치로 난 길에 물억새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양산 물 문화관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끝이 보인다. 부산 낙동강 하구둑까지 남은 길은 고작 35km. 이대로만 간다면 인증센터까지 순조롭게 도착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자전거 도로에는 사람들이 많아졌기에 속도를 낼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역풍까지 불어와 자전거의 페달을 밟기가 더욱 힘겨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의 의미가 절실하게 느껴진다.

 

 

평소 마라톤이 취미인 내가 숱하게 42.195Km 풀코스 마라톤 완주를 하며 느낀 점 중 하나는 마지막 2.195km 구간이 제일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정신은 40km를 완주하니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착각하지만, 몸은 2.195km를 뛰기엔 이미 지쳐버렸기에 그런 것이다. 지금의 몸 상태는 바로 그때와 비슷했다. 부산 낙동강 하구둑까지 가는 길 내내 달리고 서기를 끊임없이 반복해야만 했다.

 

 

FINISH! 아라서해갑문 기점 633km

 

 

‘낙동강 하구둑 자전거길 종점까지 남은거리 5km

 

‘남은거리 3km

 

‘남은거리 1km

 

힘겹게 페달을 밟았다. 하구둑은 영남의 젓줄 낙동강, 부산 사하구 하단동과 서구 명지동 사이를 잇는 방조제다. 하구둑 인증센터는 새가 많이 살고 물이 맑은 섬이라는 이름을 가진 을숙도에 위치해 있다. 을숙도는 방조제 중간에 있는 통행로를 거쳐 내려가면 된다.

 

 

마지막 도장을 찍기 직전이다. 인증센터에는 ‘FINISH! 아라서해갑문 기점 633km‘라는 글씨가 적힌 비석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 비석에 자전거를 걸쳐두니 아라 서해갑문 출발점에서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영화처럼 오버랩 되며 가슴이 벅차 왔다. 그리고선 여행 첫째 날 직장생활이란 출발점에 서 있는 나는 과연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까?라는 물음에 답을 내린다. 아무리 힘들어도 초심을 잊지 말자, 그동안 넘고 넘었던 고갯길처럼 고통 끝에는 결국 낙이 오니깐.

근처에는 국토 종주 인증 안내소도 있다. 다행히 직원이 퇴근 전이라 그동안 인증센터를 통해 도장을 찍어둔 수첩을 제출할 수 있었다. 직원에게 소중히 간직해 온 인증 수첩을 내밀었다. 수첩을 내미는 순간, 포커페이스로도 감출 수 없는 성취감과 비장함이 그 직원에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 직원은 내 맘을 다 헤아린다는 듯 노련한 표정을 지으며 몇 주 후면 집까지 인증 수첩과 완주 메달을 배송해 주겠노라 약속했다.

 

 

일상은 여행의 끝일까?

 

 

부산 사상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심야 서울행 고속버스도 이미 스마트폰을 통해 예매해 두었다. 아직 비수기이기에 고속버스 하단 트렁크에 자전거를 싣고 갈 수 있다는 정보도 사전에 입수에 두었다. 터미널까지 마중 나온 창원 친구도 만났다. 친구와는 서울에서 먹기 어려운 밀면 곱빼기를 먹었다  

 

 

식사 후 터미널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버스 시간을 기다리니 반가운 손님이 나를 또 찾아왔다. 해군 시절 나보다 먼저 병장으로 전역한 동생이었다. 그들에게 3 4일 동안 겪은 여행담을 들려줬다. 여행담을 들려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건 너무나도 행복한 일이다. 친구를 만나니 여행이 끝났음이 실감 났다.

 

 

 

 

부산에서 서울 부터미널까지 4시간 남짓, 심야버스에 몸을 맡기고 숙면에 취하기 전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제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간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기다리고 있을 소중한 일상에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일상은 여행의 끝일까?

 

아니, 일상은 반복되지 않는다. ‘일상이란 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자전거 페달을 밟듯 일상을 가고, 가고, 가면, 아름다운 일상 속 새로운 사람, 새로운 일들이 다가올 것이다.

 

‘일상은 또 다른 일상과 여행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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